니체가 한 평생을 바쳐 연구한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역사적으로 인류에 있어 절대적 가치였던 신은 죽었고,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서로 다를 바 없는 찰나의 존재일 뿐인데, 이러한 허무주의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실체없는 형이상학에 기대어 삶의 불안으로부터 회피하는 유악한 모습이 아닌, 허무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삶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삶을 “능동적 허무주의”라고 부른다. 그와 반대로, 허무주의에 잠식되어 삶에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하고 “될대로 되라”식으로 사는 무의미한 삶을 “수동적 허무주의”라고 한다.
니체의 글은 잔혹할 정도로 솔직하고 냉정하다. 팍팍한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지팡이를 걷어찬다. 그 지팡이는 종교, 미신, 도덕, 윤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는 형이상학적 가치들이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의 지팡이를 걷어차는 대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스스로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안내한다. 권력에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 등의 개념을 통해 니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너 자신에게 집중하라”이다. 종교, 윤리, 도덕과 같은 기존의 가치들로부터 해방되어, 내가 지고 있는 짐을 인지하고, 그를 극복하는 삶. 삶의 가치를 하늘로부터 찾는것이 아닌 나의 몸으로부터 찾는 삶.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 군상, 위버멘쉬의 모습이다.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짐이 무엇인가? 내가 극복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속세의 가치로부터 해방되어 정말로 내가 좇는 가치가 무엇인가? 나 같은 경우, 앞으로 남아있는 군생활과 복학 후 정진해야할 학업문제가 짐덩이이다. 그리고 해야할 일이 있을 때 회피하고 미루는 성격은 극복하고 싶은 나의 단점이다. 속세의 가치로부터 해방되어 내가 정말 좇는 가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과 속물적인 가치관에 의해 바라는 것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야할 일이 있을 때 하지 않고, 어차피 별 의미없다 치부해버리거나 “사필귀정” 따위나 들먹이며 회피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자주 보였다. 지금도 귀찮다는 핑계로, 수개월 째 핸드폰 요금제도 안바꾸고, CMS통장 개설도 안하고 있다. 이런 적재된 문제들은 시간을 흘려보내며 버틴다고 풍화 침식되지 않는다. 그 자리 그대로 썩어버린채 남아서 훗날의 나에게 해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바로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 소극적인 허무주의에 빠진 소시민의 모습이다.
이런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지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정복감과 희열을 느끼는 것이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이다. 신이 죽어버린 허무주의의 시대,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건 내 마음가짐에 달렸다.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여하는 것, 니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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