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에게 지동설 책 출판의 반쪽 짜리 허가를 받다
<두 우주체계에 대한 대화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32년에 출판한 책으로,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흘 동안 대화를 나누며 천동설과 지동설, 지구의 자전에 관해 양측의 주장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엮어놓은 책이다. 1616년, 갈릴레오는 로마 교황청 종교 재판소로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지 말라는 판결을 받는다. 당시 로마 교황청과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는 “모든 우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지만, 그 태양은 다시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튀코 브라헤의 수정된 천동설을 인정하고 있었다. 갈릴레오는 1624년 자신에게 비교적 친화적인 교황 우르바노스 8세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천동설과 비교하는 책의 출판을 허가받는다. 그러나 책의 출판 조건은, 그 책은 절대로 지동설을 지지하는 내용이어선 안 되며, 지동설은 잘못된 이론이라는 내용구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가까스로 교황의 허락을 얻어낸 갈릴레오가 피렌체에 돌아와 집필한 책이 바로 <대화>이다. 이 책에선 세 명의 친구가 나오는데, 살비아티, 사그레도, 그리고 심플리치오이다. 이 세명 중 앞 두명은 실존하는 갈릴레오의 절친한 친구였고, 심플리치오는 가상의 인물로 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가인 심플리치우에서 착안하여 지었다. 살비아티는 지동설의 지지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심플리치우는 천동설을, 사그레도는 둘 사이의 심판 역할을 하는 합리적인 시민으로 묘사된다.
셋의 대화는 나흘간 이어지는데, 하루에 한 개의 대주제꼴로 대화를 이어간다. 첫날의 주제는 우주의 일반적 구조와 그에 필요한 실험적, 논리적 과정이다. 둘째날은 지구의 자전에 대해, 셋째날은 지구의 공전에 관해, 넷째날은 밀물과 썰물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갈릴레오의 금성의 위상 변화에 대한 관찰이 지구 공전의 핵심 논거로 등장하는 부분은 바로 셋째날의 대화이다.
지동설의 근거
셋째날의 대화에서 살비아티의 말에 따르면, 태양계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주장의 대표 근거는 모든 행성들이 지구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한다는 관찰이다. 금성의 경우 가장 멀 때와 가장 가까울 때의 거리는 여섯 배나 차이난다. 화성의 경우 이 차이는 더 벌어져 여덟배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성들이 지구로부터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원 궤도로 공전할 것이라 얘기했지만, 앞서 말한 관찰을 토대로 보면 이는 틀린 얘기이다.
특히 태양계 행성 중 화성, 목성 그리고 토성은 해와 반대편에 있을 때는 지구와 가까이 있고, 해와 같은 편에 있을때는 지구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두 경우의 거리차이는 아주커서 화성의 경우 가장 가까울때와 멀리 있을때의 크기차이가 60배가 난다. 이 관찰결과는 방금 말한 세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보다 더 바깥궤도로 공전하고 있다는 추정의 근거가 된다.
이와 반대로 금성과 수성의 경우, 해로부터 일정 각도이상(40도)벌어지는 일이없다. 이는 수성과 금성이 지구보다 안쪽 궤도에서 해를 공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성의 모양 변환을 보면 어쩔 때는 해의 뒤편, 어쩔 때는 해의 앞편에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지동설의 강력한 조력자, 망원경
그러나 이와 같은 명백한 지동설의 근거는 정밀한 망원경을 발명한 갈릴레오 이전(코페르니쿠스)에는 발견되지 못했다. 육안의 분해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금성을 육안으로 관찰했을 때 금성의 크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금성은 지구보다 안쪽 궤도에서 공전하므로,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울때와 멀리 있을때의 크기차이는 이론적으로 약 마흔배가 차이나야하는데, 육안으로 관찰했을때는 거의 차이가 없다.
또 금성의 위상변화도 육안으로는 관찰되지 못했다. 금성은 본질적으로 빛을 발하지 못하므로, 해의 아래에 있을때, 금성은 그믐달이나 초승달의 위상처럼 가느다란 모습을 보여야하는데, 육안으로 볼때는 이것이 명백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코페르니쿠스는 금성이 스스로 발광하거나 특수한 물질로 구성되어 주변 빛을 흡수한 뒤 통과시킨다는 잘못된 설명을 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비롯한 몇 가지 지동설의 난점과 주변의 엄청난 핍박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을 굳건히 지켜냈다.
다행히 갈릴레오의 40배 확대 망원경 개발 이후, 앞서 나온 난점들은 해결되었다. 망원경으로 관찰한 금성의 위상은 최대와 최소가 정말 40배 가까이 차이 났다. 육안으로 관찰했을 때 크기 차이가 없었던 것은 육안의 구조적 한계 때문인데, 우리 눈은 밝은 물체를 볼 때 물체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밝은 빛살을 물체의 일부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금성이 멀리 있을때는 태양 빛을 온전히 받아 밝게 빛나고, 금성이 가까이 있을때는 태양 아래에서 빛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위상에서의 크기차이는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려웠다. 또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금성의 위상 변화 역시 갈릴레오의 망원경으로는 확인할 수 있었다.
지동설을 지적하는 책을 쓰겠다던 교황과의 약속을 보란듯이 어기며 <대화>를 출판한 뒤, 격분한 교황으로부터 갈릴레오는 온갖 수모를 겪는다. 종교재판에 넘어가 지동설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겠단 맹세를 한 후에야 학문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되었다.이 과정에서 천동설을 주장하던 기독교인들과 학자들은 지동설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성경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만을 신봉하고 그에 반대되는 근거들은 모두 무시했다. 그들은 하늘의 움직임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도 절대로 하늘을 관찰하는 일이 없었다. 살비아티의 말에 따르면 그들과 지동설 지지자들은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갈릴레이와 지동설을 둘러싼 역사를 지켜보며 느낀 점은 과학은 객관적인 관찰을 기반으로 사실을 다루는 활동이지만, 과학자는 한 사회에 속한 시민으로서, 사회 구성원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는 활동제약이 따른다는 점이다. 어떤 비판은 윤리성을 등져버린 연구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일수도 있고, 어떤 비판은 갈릴레오와 지동설이 겪었던 불합리한 억압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정당한 비판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고, 지동설에 대한 비판도 당시에는 합리적인 비판으로 여겨졌을 테니,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판단보다는 “내가 틀릴 수 있고, 너가 맞을 수 있다”는 겸손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서적
대화-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무현 올김, 사이언스북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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