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의 회전관성
서평 : 「확실성에 대하여」 를 읽고
산수명제와 물리적 명제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우리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무어의 명제들에 대한 탐구를 진행한다. 무어의 명제에 관한 여러 논의 중, 산수명제와 물리적 명제에 관한 그의 주장은 토론의 여지가 있다. 그는 “이것은 나의 손이다”라는 물리적 명제와 “12 곱하기 12는 144이다”라는 산수명제는 같은 수준에 있다고 말한다(§447). 그는 “산수 명제들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에 우리들이 놀라지 않는다면, 이것은 나의 손이다라는 명제가 똑같이 그러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왜 우리가 놀라야 하는가?라고 묻는다(§448). 그는 우리가 이것이 의자라는 것을 2x2=4라는 것과 동일한 엄격성을 갖고 배운다고 말한다.
산수명제가 더욱 확실하다는 주장
그러나 그 둘은 동일한 정도로 확실한가? 어느 한 명제가 다른 명제보다 “더욱” 확실할 수는 없는가? 수학과 공학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는 수학적 명제가 더 확실하다고 믿을 수도 있다.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이 우주의 절대적 진리에 가까워지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물리적 명제가 산수 명제에 비해 덜 확실하다고 믿는 이유는, 물리적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선 우선 언어의 정의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산수명제가 다루는 개념의 층위가 물리적 명제의 그것보다 더욱 저차원의 근본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더욱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산수명제가 더욱 확실하다는 이야기이다. (더 근본적이라고 더 확실한 것인가의 물음은 뒤에서 다룬다)
예를 들어 이것이 의자라고 할 때, 의자라는 것이 먼저 정의되어야 한다. 의자 각 부품의 형태와 크기는 인체의 특징과 사용 환경의 특징, 그리고 사용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의자의 형태는 사람이 앉는 평균 자세에 맞게 설계된다. 의자의 다리길이는 사람의 종아리 평균 길이에 맞춰지고, 의자의 다리 두께는 지구 행성의 만유인력 크기에 따른 체중에 의해 결정된다. 즉, 의자의 개념은 지구와 인간이라는 물질 그리고 인간의 행동 습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개념에 층위를 나누어 보자면, 의자는 높은 층위에 있는 개념인 것이다.
반면 수는 어떠한가? 숫자는 인간에 의해 도입된 개념이지만, 그 숫자가 대응하여 나타내는 수라는 개념은 인간과는 별개로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이다. ‘존재한다’ 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 수가 존재한다는 의미는, 자연 만물의 존재와 그들의 상호작용이, 수의 개념과 방정식에 1대1 대응될 수 있다는 실용적 관점에서 수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산수에 기반한 물리 법칙은 인간이 관측한 모든 천체 현상에서 성립한다. 시간의 흐름마저 뒤틀리는 블랙홀에서도 이러한 기본 연산법칙은 여전히 성립하며, 이것은 블랙홀로부터 방출되는 빛에 관한 이론인 호킹복사(Hawking radiatoin)를 비롯한 블랙홀에 관련한 이론 연구의 예측이, 관측결과와 일치한다는 것으로부터 확증된다. 산수명제가 근본적 층위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그보다 높은 층위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많은 명제들이 산수명제에 기반하여 구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어떤 명제가 “그것 둘레의 운동이 그것을 부동적인 것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지도리 명제이다. 지도리 명제는 “물음들과 의심들로부터 제외되어 있다”(§341). 산수명제는 그에 기반한 수많은 논리 명제들의 기본 전제로서 지도리 명제가 된다. 더 근본적인 개념으로 이루어진 명제는 다른 명제의 지도리 명제가 될 수 있고, 때문에 확실함의 지위를 얻는다.
물리적 명제가 더욱 확실하다는 주장
반대로 어떤 물리적 명제가 산수명제보다 더욱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반박을 할 수 있다. “의자의 개념이 수의 개념에 비해 더욱 높은 층위의 개념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나, 그것이 그 명제를 더욱 확실하다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이야기한 “나는 나에게 뇌가 있음을 안다”라는 명제도 역시 인간의 인체에 대한 개념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명제가 과연 2 x 2 = 4라는 산수명제보다 덜 확실하냐는 물음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산수명제는 블랙홀과 같은 먼 우주에서도 성립하기에 더욱 보편적이라고 주장했지만, 나에게 뇌가 있다는 사실 역시 블랙홀 근처에서 참일 것이다. 또한 2x2=4라는 산수명제를 내가 확신하는 까닭은, 계산 결과를 검산하여 오류가 없음을 눈으로 보고 뇌로 생각하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나의 뇌가 존재하고 나의 뇌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다. 나에게 뇌의 동작에 문제가 생긴다면 2x2 = 5라는 계산 결과를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은 아무리 형이상학적 대상을 다루더라도, 인간의 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예상 반박
이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예상 반박은 다음과 같다. 어떤 명제가 다른 명제보다 더욱 확실하다는 것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물과 강바닥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떤 명제가 강바닥을 이룰 때는 그 명제가 강물을 이루는 명제보다는 더욱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예 연관이 없는 두 강바닥 명제 사이에서는 확실성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산수명제와 물리적 명제가 같은 수준에서 확실하다고 교육받았다. 만약 확실성을 비교하기 위해선 비교척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존재하는가?
명제의 회전관성 (moment of inertia)
서로 다른 지도리 명제들의 확실성을 비교하기 위해선, 확실성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지도리 명제는 다른 명제들이 탐구될 수 있도록 고정된 회전축이 된다는 점에서, 물리학의 회전 관성 개념을 적용해볼 수 있다.
회전 관성 (moment of inertia)는 어떤 물체를 축에 대해서 회전시킬 때 얼마만큼의 관성을 갖는지를 나타낸다. 한 물체의 회전 관성은 회전축으로부터 물체를 이루는 각 질량들의 분포의 합으로 결정된다. 정확하게는 \( I=\ \sum_{i}{m_ir_i^2} \)으로 정의되며, 무거운 물체일수록, 각 질량이 축으로부터 멀리 분포해 있을수록 회전 관성이 크다. 회전 관성이 큰 물체는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그 회전의 속도나 방향을 바꾸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양쪽에 질량 1kg 추가 달려있는 20cm 크기의 아령이 있을 때, 아령을 가로로 놓인 후 중심을 축으로 한 회전 관성은 \( I=\sum_{i=1}^{2}{m_ir_i^2}=\left(1kg\right)\times\left(10cm\right)^2+\left(1kg\right)\times\left(10cm\right)^2=200\ kg/cm^2 \)이다.
이를 철학 개념에 적용한다면, 물체는 지도리 명제가 되고, 물체와 물체 사이의 거리는 지도리 명제와 다른 명제 사이의 의미상 거리에 대응된다. 한 명제와 가장 근접한 명제의 거리는 항상 같으며, 모든 명제의 밀도는 균일하다고 가정한다. 즉 어떤 명제와 다른 명제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두 명제 사이를 연결하는 명제가 여러 개 있다는 의미이다. 멀리 떨어진 명제가 지도리 명제 주위를 회전한다는 것은, 그 만큼 지도리 명제가 더욱 근본적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명제 하나의 질량은 1이라 가정한다. 따라서 한 지도리 명제의 회전 관성은 그 지도리 명제에 기반한 명제들의 “개수 곱하기 거리의 제곱의 합”으로 정의된다. \( I=\ i명제의 개수ri2 \)
위에서 도입한 방식으로 명제의 회전관성을 계산하는 예시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나에겐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라는 지도리 명제와, “나는 내가 가진 열쇠가 금고 열쇠라는 사실을 안다”(따름 명제1), “나는 내가 가진 열쇠가 열수 있는 금고가 호텔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따름 명제2) 두 따름 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때 지도리 명제의 회전 관성을 구하기 위해선, 각 명제까지의 의미상 거리를 알아야 한다. 이때 따름 명제1 까지의 거리를 r이라고 하자. 따름 명제2는 따름 명제1에 기반한 명제이므로 의미상 거리는 2r이다. 따라서 해당 지도리 명제의 회전관성은 \( I=\ \sum_{i=1}^{2}{m_ir}_i^2=1\times r^2+1\times\left(2r\right)^2=5r^2 \)이다.
이러한 단순한 관계로 이루어진 명제 군(群)에 대해서는 회전 관성의 계산이 간단하지만, 명제의 개수가 많고 관계가 복잡할 경우에는 명제의 회전관성을 계산하는 것이 어렵다. 산수 명제나 “나에게 뇌가 있음을 안다”와 같은 물리적 지도리 명제의 경우, 이 명제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명제를 세고 거리를 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 명제의 회전관성을 각각 셈하지 않고도 회전관성의 대소 비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물리학에 있다. 바로 평행축 정리이다.
평행축 정리와 이를 통한 지도리 명제의 회전 관성 비교
평행축 정리(parallel axis theorem)는 어떤 물체를 무게 중심이 아닌 다른 축을 기준으로 회전시킬 때 회전 관성을 쉽게 계산하는 방법이다. 어떤 물체의 무게중심을 축으로 한 회전관성을 \(I_{cm}\)이라 하고, 새로운 회전축으로부터 기존 축까지의 거리를 d라고 할 때, 새로운 축에 대한 회전관성은 \(I_{new}=I_{cm}+Md^2\)이다. 예를 들어 질량이 M이고 반지름이 R인 어떤 CD 디스크를 원의 중심을 축으로 회전시킬 때의 회전관성은 \(I_{cm}=\frac{MR^2}{2}\)이다. 이때 이 디스크를 지름 위의 한 점을 축으로 회전시킨다면 그때의 회전 관성은 \(I=I_{cm}+Md^2=\frac{MR^2}{2}+MR^2=\frac{3}{2}MR^2\)이다.
평행축 정리를 도입하여, 앞서 논의한 두 지도리 명제의 회전관성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산수명제의 회전관성을 \(I_{cal}\)이라 하고, “나는 뇌가 있음을 안다”의 회전 관성을 \( I_{brain} \)이라 하자. 두 명제 사이의 의미상 거리를 d라고 한다. 이때 “나는 뇌가 있음을 안다” 지도리 명제 기반한 여러 명제 중에, “나는 계산을 할 수 있음을 안다” 가 있고, 이에 다시 기반하여 “나는 2 x 2 = 4를 안다”가 성립한다. “2 x 2 = 4” 와 “나는 2x2 = 4를 안다”는 다른 명제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내가 “2 x 2 = 4”임을 발화하는 것은 결국 후자와 동치이므로 두 명제를 같은 명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나는 뇌가 있음을 안다” 명제의 회전 관성은, 산수명제와 관련된 명제와 그에 관련되지 않은 명제들까지의 거리의 제곱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산수명제와 관련된 명제들에 의한 회전 관성은 평행축 정리를 통해 구할 수 있다. 즉 \(I_{brain}=I_{산수명제 관련}+I_{산수명제 관련X } =I_cal+Md^2+I_{산수명제 관련X}\) 이다. 따라서 \(I_{brain}-I_{cal}=Md^2+I산수명제 관련X>0\) 이므로, \(I_{brain}>I_{cal}\)이다. 즉 “나는 뇌가 있음을 안다”는 명제의 회전관성은 “2x2 = 4” 라는 산수명제보다 더욱 회전관성이 큰, 다시 말해 더욱 중심축에 가까운 “확실한” 명제이다.
결론과 한계점
우리는 “산수명제와 물리적 명제는 같은 수준에 있다”(§447)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지도리 명제 사이에도 여전히 역학관계가 존재하며, 그에 따라 확실함의 정도를 나눌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지도리 명제가 다른 명제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수치화 하기위해 물리학의 회전관성 개념을 도입하였고, 이를 통해 명제의 회전관성을 계산할 수 있었다. 이때 우리가 우리의 계산결과를 신뢰하는 것은 “나에게 뇌가 있음을 안다”는 물리적 명제에 기반한다는 점을 토대로, “나에게 뇌가 있음을 안다”라는 물리적 명제의 회전관성은 산수명제에 관한 명제들과 산수명제에 관련하지 않은 명제들까지의 거리의 제곱합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짚었다. 평행축 정리를 통해서 두 명제의 회전관성을 정량적으로 계산했으며, 이를 통해 “나는 뇌가 있음을 안다”는 물리적 명제의 회전관성이 산수명제보다 큼을 보였다.
물리학의 회전관성 개념을 도입해, 각 명제의 확실함의 크기를 정량화해서 비교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회전 관성 계산의 복잡성과, 명제사이의 의미적 거리를 계산하는 것이 임의적이라는 것은 한계로 남았다. 또한 “2 x 2 = 4”라는 산수명제를 “나는 2 x 2 = 4임을 안다”는 명제와 동치에 둔 것이 과연 타당한가는 토론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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